예과 때 잠깐이지만 얼른 본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주어진 여유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지 않으면 가만히 시간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최대한 새로운 경험을 쌓으러 알바도 하고,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여유롭고 즐거운 마음에 가끔씩 찾아오는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끔 중고등학교 때 시험 끝나고 하루 종일 놀았던 해방감과 짜릿함이 그립기도 했다. 그래서 방대한 양을 공부하는 선배들이 멋있었고, 나도 공부해서 얼른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은 긴 여행이다. 필자는 1998년 미국 모체태아의학회(Society for Maternal-Fetal Medicine, SMFM)에서 특별한 논문을 접한 후 계속 마음에 담고 있다가 그해 임신 20주 자궁경부가 열리고 양막이 돌출된 산모에서 국내 최초로 “양수감압술 후 응급자궁경부봉합술”로 태아를 살리면서, ‘조산(preterm birth)과 자궁경부무력증(cervical insufficiency)’을 인생 여정의 목적지로 설정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